'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한동안 유명세라 나도 보기로 맘먹었다.
사실 다른 카페에서 철길관련 강의 영상을 보고 흥미가 생겼다는 쪽이 맞을 것이다. 나는 유행하는 책은 잘 보지 않는 편이었다.
혹시나 이 책을 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case1
당신은 기관사이다. 지금 당신이 운전하고 있는 기관차는 브레이크가 고장나서 멈출수가 없다.
저 멀리 철길위에는 다섯명의 인부가 당신 기관차의 고장을 모른체 일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당신은 그 5명을 치어죽이게 될 것이다.
마침 도중에 철길분기점이 있고, 옆 철길에는 한명의 인부만이 일하고 있다.
자, 당신은 분기점에서 길을 바꾸어 한명의 인부를 치어죽일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5명을 치어죽일 것인가.
대부분의 경우 한명의 인부를 치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case2
이번엔 당신은 철길위 다리위에 있다. 저 멀리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관차가 오고 있고 철로위에는 5명의 인부가 있다. 마침 다리의 난간위에 아주 뚱뚱한 사람이 앉아있다. 그 사람정도의 무게면 브레이크를 대신해 기차를 멈출수 있다.
당신은 그 사람을 밀어서 기차를 세워 5명을 구할 것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5명이 죽는 것을 지켜볼 것인가.
이 경우에는 위와 다르게 대부분이 한명을 미는 것을 포기한다.
위의 두 경우 모두 다섯명과 한명의 목숨을 바꾸는 것이지만, 선택은 다르다 왜 그런가? 라는 것이 토론의 주제였다.
나는 여기서 마이클 센델교수가 중요한 것을 놓쳤거나, 일부러 밝히지 않은게 아닐까 의심한다.
1-1. 행위에서 주체란 부분이 고려되지 않는다. 무슨 주체인가 하면 누가 죽이느냐 이다.
1-2. 두번째 케이스에서 만약 5명의 인부가 아니라 수백명이 타고 있는 기차였다면 그래도 선택이 같았을까 하는 의문이다.
우선 내가 생각하는 논리는
2-1. 인간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악한 행위, 정당하지 않은 행위로 본다는 것이다.
2-2. 사람을 한명 살리는 것과 한명 죽이는 것이 등가교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한명을 죽인 무게는 한명이상 최소 수십명 이상을 살리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2-3. 많은 사람들이 입과 머리가 다른 논리, 모든 생명의 가치는 동등하다. 이것은 틀린 말이다. 당연히 틀린 말이다. 생명에는 우선순위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합리적인 경우 가장 중요한 생명은 '나'의 생명이다. 그 다음은 나와 가장 유사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혹은 나에게 중요한 입지에 있는 가족들의 생명이다. 그 다음은 내가 친한 사람들이고, 그 다음은 그저 내가 알고 있던 사람, 그리고 그 다음이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각 생명들은 나에게 다른 수준의 가치를 갖고 있다.
2-1과 2-2의 논리는 생명이 보다 높은 확률로 종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유전자 정보로 넘어가는 뇌간에 들어있는 타고나는 행동양식)이다. 즉,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그 죽는 수가 커지지 않는 이상 자연선택에 의한 죽음으로 간주하고 방치하려는 본능이다.
자, 이제 1-1의 관점으로 두가지 경우를 관찰해보자.
1번케이스의 경우 다섯명이나 한명이나 주체는 나다. 가해자는 내가 되는 것이다. 즉, 내가 다섯명을 죽일 것인지 내가 한명을 죽일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아무리 산수를 못해도 한명을 죽이는 쪽을 택하게 된다.(이 경우 나의 선택은 정의랑은 무관하다. 한명이든 다섯명이든,)
2번케이스에선 1번과 전혀 다른 경우가 되어버린다. 즉, 나는 한명도 죽이지 않거나, 한명을 죽여서 5명을 살리는 입장에 놓여있다.
여기서 2-2의 논리가 작용한다. 나의 머리속에서 한명의 죽이는 것과 다섯명을 살리는 행위가 저울질 된다. 그리고 나는 다섯명을 살리기 위해서 한명을 죽이는 행위가 정의롭지 못하다(다른말로 하면, 나에게 혹은 종족에 손해가 된다.)라고 판단하게 된다. 그래서 여기에 1-2가 적용되었을 때, 즉 5명이 아니라 그 이상인 경우라면, 혹은 2-3의 논리로 그중에 나의 가족이 있다면, 당신의 선택은 달라질 것이다. 물론 2-3의 논리라면 정의랑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얘기가 흐르게 된다. 만약 수백명이 탄 기차가 있다면 당신은 '정의롭게' 난간위의 사람을 밀어버릴 것이다.
이후 아프카니스탄 파병군 얘기가 나온다.
case3
아프카니스탄에 파병된 미군장교얘기인데, 적군이 숨어있는 마을 근처에 투입된 미군소대가 마침 가축을 데리고 마을로 돌아가던 목동들을 만나게 된다. 장교는 목동을 죽여서 자신들의 존재를 숨길 것인지, 아니면 목동을 죽이지 않을지 결심하다. 결국은 살려보내게 된다. 그리고 적군에게 위치가 노출되어 소대원은 모두 전사하고 장교만이 간신히 살아서 돌아오게 된다. 이 장교는 살아와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며, 다음에 같은 위치에 놓이면 주저없이 목동을 죽일 것이라고 하였다.
이 케이스 역시 센델 교수의 함정이 있다.
1. 인원수가 크게 상관이 없다. 2-3의 논리에 의해 인원수란 것이 무의미해진다. 몇명의 목동들과 십수명의 부하들을 비교하였지만, 수십명의 목동들이었다고 해도 스토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처음 선택이 더 강해질 뿐이다.
2. 2-3의 논리가 들어가 있으므로, 그 부분이 배제된 경우, 즉 처음 결정으로 전사한 사람들과 나의 상관관계를 빼버리면 스토리가 전혀 달라져 버린다.
이 상황을 1번경우에 비교할 것인가 2번경우에 비교할 것인가?
내가 보기에 이 경우는 2번 케이스와 2-3의 조합된 결과라 생각된다.
즉, 내가 한명을 죽여서 여러명이 적군에게서 죽는 것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나는 한명도 죽이지 않고, 여러명이 죽게 놔둘 것인가의 선택이 된다. 처음의 선택에서 나라는 주체는 내가 아무도 죽이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즉, 생명의 무게 손익계산에서 실패한 것이다. 즉, 목동들 몇명과 나의 부하 십여명의 무게를, 잘못 저울질 한 것이다. 목동과 나의 부하 십여명이 나에게 같은 입장이었다면 처음 선택이 옳은 것이다. 하지만, 나의 부하들은 목숨은 목동에 비해서 매우 큰 가치를 갖게 된다. 따라서 정의로 따지자면 처음 선택이 옳지만, 나에겐 잘못된 선택이 되는 것이다.
만약, 당시 전사한 사람들이 장교의 부하가 아닌, 인연이 없는 용병이거나, 인솔중이던 난민들이었다면, 거기에 목동들의 인솔중이던 난민들보다 더 많은 인원이었다면. 장교가 과연 다음에는 목동을 죽일 것이란 생각을 하였을까?
즉, 이번 케이스에서 죽은이와 나와의 상관관계를 배제하면 단순한 2번 케이스에 가까운 경우가 되어버린다. 그래도 뭔가 찜찜한 부분이 남을 것이다. 그 부분은 2번 케이스와 달리 3번 케이스에서 죽는 목숨중에 내 목숨이 포함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잠재적이긴 하지만, 나의 생명의 무게는 매우 크기 때문에 활률상의 죽음이 나의 선택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오히려 새로운 질문을 해보고 싶어진다.
자살과 살인에 관한 것이다. 자살에 대한 평가는 자기살인으로 볼 수 있다. 나는 나라는 인간을 죽인 살인범이 된다.
'살인범=피해자' 인 상황이지만, 2-2의 논리에 의해 마이너스행위 즉, 정의롭지 못한 행위로 대부분 인식하게 된다.
case4
자, 2번 케이스로 다시 돌아가보자, 단, 이번에 철로로 떨어질 사람은 난간위의 뚱뚱한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물론 나도 기차를 멈출만큼 뚱뚱하다는 전제가 붙는다.) 이번에는 내가 나라는 인간을 죽여서 5명의 인부를 살렸다. 과연 이것은 정의로운가.
case5
위와 거의 같지만 다른 상황을 만들어보자. 이번 상황은 내가 5명의 인부를 살리기 위해 뛰어내린 것이 아닌, 자살을 위해, 즉 나를 죽이는 것이 목적으로 뛰어내린 경우이다. 이것은 과연 정의로운가.
위의 4,5번 경우는 밖에서 보기엔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정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목적, 의도라는 것이 정의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4번 경우에 의도, 목적에 부가점을 주지 않으면 2-2의 논리에 의해 정의롭지 않다는 결론을 내려야 하고, 4,5의 두가지는 똑같이 판단되어진다.
여기에 4,5번과 2-3이 결합하면 이야기는 더욱 복잡해진다.
2-3이 들어가면 4번 경우는 나의 목숨이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5명을 살리기 위해 희생한 것이 된다. 반면 5번경우 나의 목숨이 나에게 큰 가치가 없으며, 나는 큰 희생없이 5명의 목숨을 구한 것이 된다. 즉, 5번의 경우가 더 적은 희생으로 큰 생명을 구한 케이스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이것은 또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사실 여기서 5번 케이스는 4번과 같은 상황으로 보이나, 2번과 같은 상황이다. 나는 나를 살인함으로서 5명을 구한 케이스가 된다.
4번과 5번의 경우 5번의 경우가 더 적은 희생이라고 하였지만, 사실 4번의 경우가 나에게 있어서는 더 큰 피해, 즉 손해를 감수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부분이 내가 나를 죽이는 행위와 그로인해 내가 잃는 손해가 상쇄되어 버린다. 반대로 5번의 경우는 나는 더 적은 희생, 즉 더 적은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므로, 나를 죽이는 행위가 상쇄되어 버리지 못한다. 따라서 나의 나에 대한 살인이 같는 가치가 더 크게 되는 것이며, 이는 다섯명의 목숨과 비교해서 미묘한 위치가 되어버려 정의로운가라는 판단이 어렵게 되는 것이다.
나의 희생, 손해란 부분은 2번 케이스의 모르는 남자대신에 4번처럼 나를 대입하던가, 나의 가족을 대입해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나의 가족을 희생해서 5명을 구했다면, 그 행위를 정의롭다고 생각할 사람들 역시 많다.
2-3의 논지에 의해 발생하는 딜레마이지만, 2-3뒤에 명시한 것처럼 그 부분은 정의랑은 무관한 선택에 작용하는 경우가 많은 논리일 뿐이다.
여기서 추가되는 논리는
2-4 나의 행위에 의한 나의 이미 예측되어진 희생(손해)은 정의에서 플러스의 가치를 갖게 된다. 예측되어지지 않았다면 정의와 무관하다.
****정의(justice)에 대한 나의 정의는 '모두가 합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가치교환'이다. 여기서 모두는 해당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외의 사람들을 포함하며, 합당하다는 것은 갑과 을의 입장을 바꾸어도 갑을모두 불만이 없는 것을 말한다.****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고용되어 8시간을 일하고 5만원을 받는다고 할 때, 고용주가 같은 일을 8시간 하고 5만원을 받는 것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고용자와 노동자의 입장이 바뀌어 고용자는 노동자가 한 일을 하고 5만원을 받아도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노예제도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고용주가 노동자와 입장이 바뀌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정의는 저울로 상징되어 진다. 즉, 양쪽이 서로 대등한 입장이어야 하며, 좌측과 우측을 서로 바꾸어도 저울의 침이 움직여서는 안된다. 만약 좌우의 물건을 바꾸어 저울이 기울어진다면 그것은 공정한 저울이 아니고, 정의롭지 못하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정의다.